대전의 효문화유적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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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동 김만중 정려각

전민동에 위치한 정려로 1706(숙종 32)에 내려졌다.

김만중(1637~1692)은 아버지인 김익겸이 정축호란(1637)때 순국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형 김만기와 함께 어머니 해평 윤씨 부인을 모시며 자랐다. 윤씨 부인(1617~1689)은 두 형제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것을 늘 걱정하여 정성을 다하여 키웠다고 한다. 그는 14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16세에 진사에 1등으로 합격하였다. 그 후 29세에 정시문과에서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가서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숙종 대에 인선대비의 상복문제로 서인이 패배하자 관작을 삭탈 당했다. 후일 장숙의(후의 장희빈) 일가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유배 중에 구운몽(1687(숙종 13))에 집필하였고 구운몽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해진다. 이는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지은 것으로 김만중의 깊은 효성을 알 수 있다.

구운몽 외에도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의 저서가 전해진다.

윤씨 부인은 늘 김만중을 걱정하다가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때 김만중은 남해에 유배되어 있어 어머니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애통해 하다가 1692(숙종 18)55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소가 휴전선 근처에 위치해 있어 전민동의 부모 묘소 인근에 후손들과 추앙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최근에 새로이 정문과 효자비 및 문학비, 충효소설비 등을 세웠다.



<참고자료>

대전광역시대전사료총서(叢書11(대전시사자료집 Ⅲ」 연산군일기 숙종실록 편, 2008

대전광역시대전사료총서(叢書12(대전시사자료집 Ⅳ」 경종실록 순종실록 편, 2009

유성문화원선비고을 유성이야기송백헌김용관, 2010

대전광역시2015 대전의 역사와 문화재 제6집 덕()을 품은 대전-비지정 유교 문화재, 2015

      大田廣域市大田의 烈 旌閭誌大田廣域市史編纂委員會,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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