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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효문화유적 특별전


1) 정려의 의미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권장하기 위하여 행실에 모범이 되는 사람이 살던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정문(旌門)이나 정려각(旌閭閣)을 세워 그들의 행실을 알리고 기념하는 행위이다. 정려 포상의 대상은 유교 도덕 사상의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중 삼강(三綱)에 해당하는 임금과 신하(충신), 부모와 자식(효자), 남편과 아내(열녀)의 지켜야 할 도리를 훌륭히 지켜낸 사례들이다. 우리나라는 유교를 수용한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을 사회적 윤리와 지켜야할 덕목으로 삼아 삼강오륜이 백성들을 교화하는 수단이 되었고 이는 국가와 사회의 안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정려가 발달하였는데 정려가 내려진 다양한 덕행들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교화하여 그 시대에 맞는 유교적 인간상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정려는 신라 경덕왕대 향덕의 사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14년(755) 봄에 곡식이 귀하여 민간에 기근이 들자 웅천주(현재 공주)의 향덕이라는 사람이 가난하여 부모를 봉양할 수 없어 (자신의) 다리의 살을 떼어 봉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후히 하사하고 문려를 정표하였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왕이 내린 하사품은 벼 300휘, 집 한 채, 구분전(口分田) 약간 이었으며, 정표 방식은 비를 세우고 사적을 기록하여 기념하도록 하는 효행비의 건립이었다.


이 후 정려정책은 19세기 후반인 조선 말기까지 꾸준히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정려 포상을 받기 위해서 먼저 인물의 행적(충‧효‧열)을 찾는다. 그리고 그 행적이 뛰어나서 해당 지역의 사족이나 유생들 사이에서 포상의 당위성이나 필요성 등이 공론화 되어야 한다. 그 후 지역민(사족, 유생)이 추천서를 고을 수령에게 올리고 수령은 감영(관찰사)에게 보내어 예조에서 포상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지방관이 행적을 검토하여 사실이 확인되면 왕에게 아뢰어 허락을 받아 포상하게 되고 그 중 가장 영예로운 것이 정려의 건립을 허락받는 것이다. 정려의 건립을 허락받으면 명정 현판도 함께 작성되는데 먼저 충신, 효자, 열녀의 구분을 하고 포상 받는 사람의 신분과 성명을 적은 후 정려를 받은 연대(명정년대)를 기록하는 순으로 작성된다.


 


2) 정려의 종류 


정려와 관련된 기물로는 정려문, 정려각, 정려기 등이 있다.

- 정려기(旌閭記):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부를 기리기 위해 그들의 행적, 이름, 관직 등을 적은 현판

- 정려비(旌閭碑):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부를 기리기 위해 그들의 행적, 이름, 관직 등을 적은 비석

- 정려문(旌閭門): 정려기를 게시한 문

- 정려각(旌閭閣): 정려비나 정려기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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