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추존 익종(수릉)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48
- 조회수 : 688
추존 익종(翼宗) 신정왕후(神貞王后)
생몰년: 익종 1809~1830 신정왕후 1808~1890
지정사항: 사적 제 193호(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7-2)
형식: 합장
1. 문조와 신정왕후의 생애
1) 문조(1809-1830)
조선후기의 추존왕追尊王이다. 이름은 영旲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이다. 제23대 왕인 순조의 세자世子이다.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로 김조순金祖淳의 딸이다.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인 풍양조씨豐壤趙氏를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인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어진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동시에 모든 백성을 위하는 정책의 구현에 노력하였으나 불행히도 대리청정을 수행한지 4년 만에 승하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왕으로 추존되어 익종翼宗이라 하였고 이후 고종연간 다시 문조文祖라 추숭하였다. 묘호는 문호文祜,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綏陵이며 시호는 효명孝明이다.
2) 신정왕후(1808-1890)
추존왕 문조의 비이다. 아버지는 풍은부원군 조만영趙萬永이며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인 목사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12세때 익종비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되었고 효부라는 칭찬을 들었다. 1827년 헌종을 낳았다. 1834년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죽은 남편이 익종으로 추봉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57년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죽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재위13년만에 후사後嗣도 없이 승하하자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권한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 그 전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및 조카 조성하趙成夏와 손을 잡고 있었으므로 즉각 흥선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또한 안동김씨 세력을 더욱 약화시키기 위해 고종을 아들로 삼아 철종이 아니라 익종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전에 고종의 옥좌를 마련하고 자신은 그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1866년 2월까지 계속 수렴청정을 하며 관리의 탐학방지, 진휼賑恤, 황해도 도장導掌폐해 엄금 공폐(貢弊)제거 둥을 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흥선대원군이 모든 정권을 잡도록 도우려는 의도였다는 평가가 있다.
1890년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興福殿에서 승하하였으며,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내에 남편 문조와 합장되어 있는 수릉綏陵이다. 승하한지 9년 뒤인 광무光武3년 남편 효명세자가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자 함께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 p.364~365)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