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숙종비 인경왕후(익릉)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42
- 조회수 : 643
19대 숙종 비 인경왕후(仁敬王后) (익릉 /翼陵)
생몰년: 1661~1680
지정사항: 사적 제198호(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4)
형식: 단릉
1. 인경왕후의 생애
조선 제 19대 왕 숙종의 원비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예학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의 4대손인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의 딸이다. 1670년(현종11) 10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어의동 별궁別宮에 들어갔으며 다음해 3월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1676년 정식으로 왕비의 책명冊命을 받았다.
1680년 10월에 천연두天然痘의 증세가 보였는데 이때 숙종도 천연두를 겪지 않아서 약방도제조藥房都提調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건의에 의하여 왕은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였다. 발병 8일 만에 1680년 10월 26일 경덕궁慶德宮 회상전會祥殿에서 승하하였다. 소생으로 두 공주가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인경왕후가 승하한 시기는 치열한 당쟁이 벌어진 숙종 초반기로써, 왕후의 죽음은 지문誌文을 짓는 과정에서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서인 송시열宋時烈과 남인 권유權兪가 각기 왕후의 지문을 지어올렸다.
1680년 11 월 2 일 빈청에서 시호를 ‘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인경왕후 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仁敬王后’로 올렸으니 ‘인경’은 대개 시법盆法에‘인덕仁德올 베풀고 정의를 행하였으며 자나 깨나 항상 조심하고 가다듬는다’는 뜻이다. 능호陵號는 익릉翼陵, 전호殿號는 영소(永昭)라 하였다. 1713년(숙종 39) ‘광렬光烈’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1722년(경종 2) 휘호徽號 효장명현孝莊明顯을, 1753년(영조 29) 존호‘선목宣穆’을, 1766년 존호‘혜성惠聖’을 각각 올렸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 내에 단릉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Ⅵ, p.184~185)
참고문헌
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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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4『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