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500년

  • 홈
  • 전시
  • 조선왕릉500년

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단종비 정순왕후(사릉)


 

6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 思陵)
생몰년: 1440~1521
지정사항: 사적 제 209호(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산 65-1)
형식: 단릉

(1) 정순왕후의 생애
 본관은 여산礪山, 성은 송宋씨, 부친은 판동녕부사 송현수宋玹壽이다. 단종의 비로 1454년(단종 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21년(중종 16) 6월 4일에 승하하였다. 1455년 (세조 1) 세조의 찬역簒逆으로 단종이 왕위를 내놓고 상왕上王이 되자, 왕비도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로 봉해졌다. 이후 1457년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자, 왕비도 부인夫人으로 강봉降封되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면서, 정순왕후로 추복되었다. 시호를 ‘정순定順’, 휘호徽號는 ‘단량 제경端良齊敬’, 능호는‘사릉思陵’이라고 하였다. 
 정순왕후는 살아있을 때에도 성내에 거처하지 않고, 동교東郊에 거쳐하면서 노릉魯陵(추복되기 전 단종의 능)을 멀리서 바라보기를 원하였으므로, 조정에서 동문 밖에 집을 지어주고 영빈暎嬪 정동貞洞이라 불렀다. 그러나 따로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서 거처하며 소복素服 차림으로 소식素食하며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2) 사릉의 조성
 사릉思陵은 단릉單陵형식이다. 부인夫人으로 강봉된 상태에서 승하하여 능이 아닌 묘로 조성되었다. 묘는 양주楊州 건천면乾川面에 위치한 단종의 생질甥姪인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의 선산에 자리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장릉과 함께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다. 처음에 단종은 영월寧越에 장사지냈고, 왕후는 양주楊州에 장사지냈다. 이때 그전대로 증수增修하고, 인산因山의 제도에 따랐다. 이듬해 3월 초1일에 대왕의 능을 봉封하고, 2월 20일에 왕후의 능을 봉하였다.
 구주舊主(단종의 시신)는 이전에 함[櫝]을 함께 한 것에 따라 사릉思陵에 함께 매안埋安 하였다. 
 사릉의 좌향은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홍살문의 축과 정자각, 봉분의 축이 일치하는 직선형 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Ⅱ, p.245)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Ⅱ』

담당부서
운영지원부
담당자
전화번호
042)580-9056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