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순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34
- 조회수 :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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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순종(純宗)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유릉 / 裕陵)
생몰년:순종 1874~1926 순명효황후 1872~1904 순정효황후 1894~1966
재위기간:1907~1910(33세~36세)/ 3년 1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207호(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형식: 합장
1. 순종 ·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생애
1) 순종(1874-1926)
조선 27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척坧, 자는 군방君邦, 호는 정헌正軒이다. 1874년 2월 창덕궁의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둘째 아들로 탄생하였다. 탄생 다음 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에 민씨 (후의 純明孝皇后)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 새로이 윤씨를 황태자비로 맞이하였다.
1907년 7월에 일제의 강요와 일부 친일정객의 매국 행위로 왕위를 물러나게 된 고종의 양위를 받아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황제皇弟인 영친왕英親王을 황태자로 옹립하였고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4년 간에 걸친 순종의 재위기간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무력강점으로 국권이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순종이 즉위한 직후인 1907년 7월 일제는 이른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丁未七條約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정부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시작하였다. 내정간섭권을 탈취한 일본은 동시에 얼마 남지 않았던 한국 군대를 재정 부족이라는 구실로 강제해산시켰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기유 각서에 의해 사법권마저 강탈했다.
일제는 1909년 7월 각의閣議에서‘한일합병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한국과 만주문제를 러시아와 사전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安重根에 의하여 사살되자 이를 기회로 한반도 무력 강점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일제는 이러한 침략의도에 부화뇌동하는 친일매국노 이완용 · 송병준 · 이용구李容九 등이 중심이 된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앞세워 조선인의 원願에 의하여 조선을 합병한다는 미명 하에 위협과 매수로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마침내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당시 순종은 친일 매국대신들 사이에서 국가최고의 수렴자로서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무력 앞에 종언을 고한 뒤, 순종은 황제의 위치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창덕궁 이왕昌德宮李王으로 예우하고 왕위의 허호虛號는 세습되도록 조처되었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거처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4월 25일에 승하하였다. 6월에 국장을 치러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순종의 인산례因山禮를 기해 6·10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2) 순명효황후(1872-1904)
조선 27대 순종의 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좌찬성 증 영의정 여은부원군 충문공左贊麟領議政騎恩府院君忠文公 민태호閔台鎬의 딸이다. 양덕방陽德坊 사제私第에서 태어나 1882년 11세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안국동 별궁에서 가례嘉禮를 행하였다.
1897년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나 1904년 경운궁慶運宮의 강태실康泰室에서 33세로 승하하였다. 능은 유릉裕陵으로 조성 당시 능호는 유강원裕康園이었으나 1907년 순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릉으로 추봉되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남양주 금곡으로 천봉한 후 합봉되었다.
3) 순정효황후(1894-1966)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해풍부원군海豐府院君 윤택영尹澤榮의 딸이다. 황태자비 민씨가 1904년에 사망하자 1906년12월13세에 황태자비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순종의 동생 영친왕英親王은 고종의 제7자로 황귀비엄씨皇貴妃嚴氏의 출생인데 순종이 즉위하자 엄비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의 중론에 따라 황태자로 책립하였는바 당시
세론은 형제로 계통繼琉을 세움이 불가하다 하면서 황태제皇太弟라 하였다. 1907년에 여학女學에 입학하여 황후궁에 여시강女侍講을 두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될 때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므로, 황비가 이를저지하고자 치마 속에 옥새玉璽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으나, 숙부인 윤덕영尹悳榮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만년에 고독과 비운을 달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1966년에 낙선재樂善齋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1966년 인산날 많은 관중들이 운집하여 황후의 마지막길을 배웅하였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 p.374~375)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