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철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32
- 조회수 :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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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철종(哲宗) 철인왕후(哲仁王后) (예릉/睿陵)
생몰년: 철종 1831~1863 철인왕후 1837~1878
재위기간: 1849~1863(19세~33세)
지정사항: 사적 제 200호(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40-3)
형식: 쌍릉
1. 철종과 철인왕후의 생애
1) 철종(1831-1863)
철종은 조선 25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변李昇이고 초명은 이원범李元範이다.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다.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광 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的大夫人 염씨廉氏이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이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 때 나이 19세였다.
1844년 형 회평군 명懷平君 明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다가 갑자기 명을 받아 봉영의식奉迎儀式 행한 뒤 6월8일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졌다. 이어 이튿날인 6월 9일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관례冠禮를 행한 뒤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였다. 나이가 어리고 갑자기 왕이 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 9월에는 대왕대비의 근친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明純王后로 맞았다. 그 뒤 김문근이 영은부원군이 되어 왕비의 아버지로서 왕을 돕게 되자 순조 때부터 시작 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또다시 반복되었다.
철종은 1852년부터 친정하였다. 이듬 해 봄에는 관서지방의 기근대책으로 선혜청전宣惠廳錢5만냥과 사역원삼포세 6만냥을 진대賑貸하게 하였다. 또 그 해 여름에 한재가 심한데도 재곡이 없어 구활하지 못하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겨 재용財用의 절약과 탐욕이 많고 비리를 저지른 것에 대해 의 징벌을 엄명하였다. 1856년 봄에는 화재를 입은 여주의 민가 약 1,000호에 은지銀子와 단목丹木을 내려주어 구활하게하였다. 또한 함홍의 화재민에게도 3,000냥을 지급하였다. 이 해 7월에는 영남의 수재지역에 내탕금 2,000냥, 단목 2,0002근, 호초胡椒 200근을 내려주어 구제하는 등 빈민구호책을 적극 실시하였다.
철종 재위 기간 동안 정치의 실권은 안동김씨의 일족이 좌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삼정三攻(田政軍政還穀)의 문란이 더욱 심해지고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마침내 농민들은 1862년 봄 진주민란을 시발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이에 철종은 삼정이정청 이라는 임시특별기구를 설치해, 민란의 원인이 된 삼정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을 세워 시행하게하였다. 그리고 모든 관료에게는 그 방책을 강구해 올리게 하는 등 민란수습에 힘썼다.
그러나 뿌리 깊은 세도의 굴레에 얽매여 제대로 정치를 펴 나갈 수 없었다.
1863년 12월 8일 재위 14년 만에 3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어진 4본이 천한전天漢殿에봉안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에그슬린 1본만 전해지고 있다. 혈육으로는 궁인 범씨范氏 소생의 영혜옹주永惠翁主가 있어 금릉위錦陶討 박영효朴泳孝에게 출가했을 뿐 후사가 없었다. 묘호는 철종哲宗이다. 능호는 예릉睿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에 있다.
2) 철인왕후(1837-1878)
조선 25대 왕 철종의 비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김문근, 어머니는 이용수의 딸이다.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근친으로 1851년 왕비에 책봉되어 어의동於義洞본궁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1858년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다. 1863년 명순明純의 존호를 받고 이듬해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1866년 휘성徽聖에 이어 정원正元, 1873년에는 다시 수령의 존호를 받아 명순휘성정원수령대비가 되었다.
1878년 창경원 양화당養和堂에서 승하하였다. 순조 때부터 이어온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그가 왕비로 된 이후 절정에 달하였다. 시호는 명순휘성정원수령경헌장목철인왕후明純徽聖正元醉鬪緯莊穆哲仁王后이고 능호는 예릉睿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옵 원당리 삼릉西三陵 내에 있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 p.126~127)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