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단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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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단종(端宗) (장릉 / 莊陵)
생몰년: 1441~1457
재위기간: 1452~1455 (12세~17세) / 3년 2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 196호(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33-1)
형식: 단릉
1) 단종(1441 ~ 1457)의 생애
단종端宗은 조선의 5대왕 문종文宗과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의 외아들로 휘는 ‘홍위弘暐’이다. 1441년 7월 23일에 태어났으며, 1448년 왕세손王世孫으로 봉해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종이 단종을 국저國儲로 삼도록 하여 1451년 정월에 왕세자王世子가 되었다. 1452년에 문종이 경복궁 천추전千秋殿에서 훙薨하니,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455년 숙부叔父인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에게 선위하였다. 1457년(세조 3) 10월에 상왕복위上王復位 모의謀議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었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었다.
‘공의온문恭懿溫文’라는 존호尊號를 세조가 올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며, 숙종 연간(1698년)에 따로 대왕의 시호를 만들어 올렸다. 시호는 ‘순정 안장 경순 돈효純定安莊景順敦孝’, 묘호는 ‘단종端宗’, 능호는 ‘장릉莊陵’이다 .
2) 장릉의 조성
1457년(세조 3) 단종이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뒤 시신은 영월의 동가에 버려졌다.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시신을 거두어 염습殮襲하고, 재궁梓宮을 갖추어 장사를 지내 동을지산冬乙旨山에 암매장 하였다.
그로부터 59년이 지난 1516년(중종 11)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 1516년(중종 11)12월 15일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1580년(선조 13)에 의물儀物을 갖추지 못하여 묘도墓道가 황폐하였다고 하니, 묘를 (封 하고 입석立石하였다. 상석, 표석, 장명등, 석망주를 세웠으며, 1698년(숙종 24) 단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심과 동시에 이곳의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장릉과 사릉의 역사役事는 3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1698년(숙종 24)에 임금이 친히 향사를 행하였다. 처음에 대왕은 영월寧越에 장사지냈고, 왕후는 양주揚州에 장사지냈다. 이때 그전대로 증수增修하고, 인산因山의 제도에 따랐다. 이듬해 3월 초1일에 대왕의 능을 봉封하고 2월 20일에 왕후의 능을 봉하였다.
숙종 연간에 구주舊主(단종의 시신)는 이전에 함을 함께한 것에 따라 사릉思陵에 함께 매안埋安하고 영월에서 받들던 위판位版도 이전에 함[櫝]을 함께 한 것에 따라 장릉莊陵에 매안하였다.
1704년(숙종 30)에 장릉을 개봉할 때 의식儀式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지석誌石을 매안해야 한다는 상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석을 매안하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야 하고 지문誌文에 사실事實을 기록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표석表石을 세우는 것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지석誌石은 편하지 못하고 표석表石을 다른 능침陵寢에도 두루 세우지 않았으니, 다르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서 그대로 두게 하였다.
1733년(영조 9)에 비석이 없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능침陵寢이 있는 곳을 알기 어려울 것이라는 건의에 따라 비석을 설치하였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Ⅱ, p.85)
참고문헌
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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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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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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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