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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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500년 특별전-정종

 

2대 정종(定宗)ㆍ정안왕후(定安王后) (후릉/ 厚陵)
생몰년(연령): 정종 1357 ~ 1419(41세~63세)/ 정안왕후 1355 ~ 1412
재위기간: 1398~1400 / 2년 2개월
지정사항: 북한 보존급유적 제 551호(북한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
형식: 쌍릉

 

(1) 정종과 정안왕후의 생애
 정종(定宗 1357~1419)는 조선의 제2대 국왕으로 이름은 방과(芳果), 자는 광원(光遠)이다. 국왕이 된 후 이름을 경(曔)으로 고쳤다. 태조와 신의왕후의 둘째 아들이고, 함흥의 귀주동(歸州洞)에서 태어났다. 1377년(우왕 3) 지리산에서 왜구를 방어했고, 1390년에 공양왕을 옹립한 공로로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되자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졌고 의흥친군위절제사(義興親軍衛節制使)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의흥삼군부중군절제사가 되었다.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이 일어난 직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정치적 실권은 아우인 정안공(태종)에 게 있었는데, 정안공은 영안군이 태조의 적장자(嫡長子)임을 들어 왕세자로 책봉되도록 지원했다. 정종은 그해 9월 5일에 태조의 선위(禪位)로 국왕이 되었고, 1400년(정종 2)2월에 정안군을 왕세자로 책봉했다. 이 때 정종은 왕세자로 책봉할 적자(嫡子)가 없었다. 정종은 1400년 11월 11일에 정안군에게 선위했고, 태종은 정종에게 ‘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上王)’ 이란 존호를 올렸다.
 왕위에서 물러난 정종은 개성의 인덕궁(仁德宮)에 거처하며 격구, 사냥 등으로 소일했고, 1419년(세종 1)9월 26일 인덕궁에서 사망했다. 1419년 12월에 세종은 온인공용 순효대왕(溫仁恭勇 順孝大王)이란 시호를 올리고 능호를 후릉(厚陵)이라 했으며, 1420년 1월 3일 후릉에 장사지냈다. 1420년 4월에 시호를 공정온인 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으로 고쳤는데, 명나라 황제가 공정(恭靖)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여 공(恭)자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1681년(숙종 7)에 숙종은 정종(定宗)이란 묘호를 정하고, 의문장무(懿文莊武)란 시호를 추가로 올렸다.
 정안왕후(定安王后 1355~1412)는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의 딸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1398년 정안군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덕빈(德嬪)에 봉해졌다. 1400년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란 존호를 받았다. 인자하고 후덕하며 정종에게 선위할 것을 권유하여 천수(天壽)를 다하게 한 공로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412년(태종 12) 6월 25일에 인덕궁에서 사망했고, 7월 20일에 태종이 정안왕후란 시호를 올리고 능호를 후릉(厚陵)이라 했다. 1412년 8월 8일에 후릉에 장사지냈다. 1682년(숙종 7) 11월에 숙종은 온명장의(溫明莊懿)랑 시호를 추가로 올렸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p.264)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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