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명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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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명종(明宗)ㆍ인순왕후(仁順王后) (강릉 / 康陵)
생몰년:명종 1534~1567 인순왕후 1545~1567
재위기간:1545~1567(12세~44세)/ 22년
지정사항: 사적 제2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313-19)
형식: 쌍릉
1) 명종과 인순왕후의 생애
가. 명종(1534 ~1567)
명종은 조선 제13대 국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름은 환峘, 자는 대양對陽이다. 탄생일은 5월 22일이다. 중종의 둘째 아들로 인종의 아우이고,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1501 ~ 1565)이다. 비는 인순왕후仁順王后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이다.
중종은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 사이에서 인종을 낳았고,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명종을 낳았다. 중종이 승하한 후 인종이 즉위했으나 재위 8개월 만에 중병을 얻자 당시 12세였던 경원대군慶原大君(후의 명종)에게 양위할 것을 유시로 남겼다. 이후 1545년 7월 6일 등극하였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여 정무를 보았다. 그 결과 외척外戚들의 전횡이 심해져 왕후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이 득세하여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인종이 세자로 있을 때 문정왕후가 명종을 낳자, 장경왕후의 동생인 윤임尹任이 김안로金安老 등과 함께 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문정왕후와 알력이 생겼다. 1537년(중종 32) 김안로가 실각하고 윤원형 등이 등용되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암투가 더욱 치열해졌다. 이때 윤임 일파를 대윤大尹, 윤원형 일파를 소윤小尹이라고 하였다.
인종이 즉위하자 한 때 윤임이 득세하여 이언적李彦迪 등 사림士林의 명사를 많이 등용해 기세를 떨쳤다. 그러나 곧 명종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사태는 크게 변하였다. 윤원형은 윤임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鳳城君(중종의 여덟째 아들)에게 왕위를 옮기려 한다고 무고하는 한편, 윤임이 인종이 죽을 당시에 계성군桂成君
(성종의 셋째 아들)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하였다. 이를 구실로 명종과 문정왕후에게 이들의 숙청을 강력히 권유하여, 윤임·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사사賜死하게 하고, 이들의 일가와 그 당류黨流인 사림을 유배시켰다. 이어서 1547년에는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을 계기로 그들의 잔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이로써 외척 전횡의 시대가 전개되자, 명종은 윤원형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이량李梁을 등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더욱 문란해지고 파쟁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林巨正이 1559년부터 1562년 사이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를 횡행하였다. 밖으로는 삼포왜란三浦倭亂 이래 세견선歲遣船의 감소로 곤란을 받아온 왜인들이 1555년 배 60여 척을 이끌고 전라도를 침입했다. 이들은 결국 이준경李浚慶, 김경석金慶錫, 남치훈南致勳 등에 의해 영암靈巖에서 격퇴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모친 문정왕후의 전권과 간섭 속에서도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통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해 선정을 베풀려 했고 사액서원賜額書院을 제도화하여 사림士林의 학술활동을 후원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문정왕후 뒤를 이어 불교를 장려하였고 경전을 활발히 편찬하도록 하여 16세기 불교문화 진작에 일조하였다. 1567년 6월 28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경복궁 양심당養心堂에서 승하하였다. 인순왕후와의 사이에서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낳았으나 1563년 13세의 어린나이에 죽어서, 왕위는 덕흥부원군德興府院君(중종의 아홉째 아들)의 셋째 아들이 계승했으니, 이가 곧 선조宣祖이다. 시호는 ‘공헌 헌의 소문 광숙 경효대왕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고 능호는 ‘강릉康陵’으로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나. 인순왕후(1532~1575)
인순왕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비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손녀이자 청릉부원군 심강의 맏딸이다. 모친은 전주 이씨이다. 12세 때 경원대군(명종)과 가례를 올리고 인종이 죽은 후 1545년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551년에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13세로 일찍 죽었다. 후궁들에게서도 후사가 없자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후의 선조)을 양자로 입적하여 보위에 오르게 하였다. 선조 즉위 후 잠시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곧 청정을 철회하였다.
시어머니 문정왕후의 섭정과 윤원형 등의 외척세력이 득세함에 따라 명종과 더불어 왕비로서 제대로 뜻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1569년(선조 2) 의성懿聖의 존호尊號가 진상進上되었다. 세상을 뜨기 일년 전부터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1575년 1월 2일 44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승하하여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강릉에 명종 옆에 묻혔다. 시호는 ‘선열 의성 인순왕후宣烈懿聖仁順王后’, 혼전魂殿의 이름은 ‘경모敬慕’이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Ⅳ, p.99~100)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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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3『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