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태조
- 전시일정 : 조선왕릉 500년 특별전-태조
- 전시관 : 조선왕릉 500년 특별전-태조
- 등록일 : 20-10-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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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태조(太祖) / (건원릉/健元陵)
생몰년(연령):1335~1408(57세~74세)
재위기간: 1392~1398 / 6년 2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 193호(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2 동구릉)
(1) 태조의 생애
태조는 조선을 개국한 국왕으로 왕이 되기 이전의 이름은 성계(成桂)이며 자는 중결(中潔), 호는 송헌(松軒)이다. 국왕으로 등극한 후 이름은 단(旦), 자는 군진 (君晉)으로 고쳤다.
태조는 1362년(공민왕11) 정월에 홍건적이 장악한 개경을 탈환했고,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 여진, 왜구를 물리치면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1388년(우왕 14)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하자 이에 반발하여 요동 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했고, 개경에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창왕을 옹립했다가 얼마 후 공양왕을 옹립했다. 1391년 삼군도총제사가 되어 전제개혁을 단행했고, 1392년 7월에 공양왕을 내쫓고 조선을 세웠다.
태조는 즉위한 직후에 이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했는데,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왕자들 사이에 쟁탈전이 일어났다. 1398년(태조 7)에 이방원이 신덕왕후의 소생이자 아우인 이방석과 이방번을 죽이는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태조는 이방원의 형인 이방과(정종) 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고, 1400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태상왕(太上王)이 되었다.
이후 태조는 소요산과 함주(함흥) 등지에 머물다가 1402년(태종 2)에 서울로 돌아왔다. 만년에 태조는 덕안전(德安殿)을 지어 불도에 정진하다가 1408년 5월 24일에 창덕궁 별전에서 사망했다. 1408년 9월에 시호와 묘호(廟號)가 정해졌는데, 시호는 ‘지인계운 성무신무 대왕(至仁啟運聖文神武大王)’ 이었고, 묘호는 ‘태조(太祖)’ 였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p.48)
(2) 건원릉의 억새풀
건원릉의 봉분에는 다른 능과는 달리 억새풀이 있는데 이는 태조 이성계의 유언에 따라 고향 함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와 조성하였다. 봉분위의 억새풀은 매년 한차례 한식 때만 벌초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억새풀과 관련해서는 인조실록 <『仁祖實錄』卷 20, 7年 3月 乙亥(19日)>에 기록이 있다.
홍서봉:“ 건원릉의 사초(沙草)를 다시 고친 대가 없었는데, 지금 건원릉에서 아뢴 것을 보면 능 앞에 잡목들이 뿌리를 박아 점점 능 가까이로 뻗어 난다고 합니다. 원래 태조의 유교(遺敎)를 따라 북도의 청완(靑薍)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뿌리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제 대신들과 논의해 보았는데, 모두 나무 뿌리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사초가 부족하다면 다른 사초를 써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인조:“한식에 쑥 뿌리 등을 제거할 때 나무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가 큰 뒤에야 능 전체를 고치려고 하다니 매우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흙을 파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메우면 뿌리는 자연히 죽을 것이다. 예로부터 능의 사초를 손대지 않았던 것을 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이니 손을 대면 안된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p.51)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