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태조원비 신의왕후(제릉)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34
- 조회수 : 679
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 제릉
생몰년: 1337 ~ 1391
지정사항: 북한 보존급유적 제 1629호
(경기도 개풍군 상도면 풍천리<현재 개성시 판문군 지동>)
형식: 단릉
(1) 신의왕후의 생애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는 안변지방의 세족(世族)이었던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 한경(韓卿)과 신씨 부인의 소생이다. 신의왕후는 태조와 결혼한 이후 함흥 운전리(雲田里)에 살았고, 태조가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올리자 원신택주(元信宅主)로 봉해졌다. 우왕대 포천 재벽동(滓甓洞)에 살다가 위화도 회군이 있을 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동북면(덕원) 으로 피난을 했다. 1389년 태조가 공양왕을 옹립하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자 태조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때 한씨는 태조의 안위를 걱정하다가 병이 들었고 1391년 9월 23일에 사망했다. 그녀의 장지는 개성 남쪽의 해풍군(海豐君) 치속촌(治粟村) 이었다.
1392년 7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한씨의 시호를 절비(節妃)라 하고 능호를 제릉(齊陵)이라 했다. 1398년(태조 7) 절비를 추존하여 신의왕후라 했고 신주를 모신 건물을 인소전(仁昭殿)이라 했다. 1408년(태종 8)에 태종은 신의왕후의 시호를 ‘승인순성 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로 높였고. 1410년에 태조를 종묘에 부묘(祔廟)할 때 신의왕후의 신주도 함께 모셨다. 1683년(숙종 9)숙종은 신의왕후의 시호에 ‘태(太)’ 자가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승인순성신의왕후’ 로 바꾸었다.
태조와 신의왕후 사이에는 둘째 아들인 정종과 다섯째 아들인 태종을 비롯하여 여섯 명의 아들과 경신공주(慶愼公主), 경선공주(慶善公主)가 있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p.142)
제릉의 경우 북한에 있는 관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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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