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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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순조


 


23대 순조(純祖) 순원왕후(純元王后) (인릉/仁陵)
생몰년: 순조 1790~1834 순원왕후 1789~1857
재위기간:1800~1834(12세~45세)/34년 4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 194호(서울 서초구 내곡동 13-1)
형식:합장

 

 

1. 순조와 순원왕후의 생애
1) 순조(1790-1834)
 조선 23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공玜 자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이다. 정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박준원朴準源의 딸 수빈綏嬪이다. 1800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 해 6월 정조가 승하하자, 7월 11 세의 어린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했다.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영조계비 경주김씨)가 수렴청정 하였다. 1802년10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을 왕비王妃 순원왕후로 맞았다.
 1801년 대왕대비는 궁방宮房과 관아官衙에 예속되어 있던 공노비公奴婢를 혁파하고 서얼 유통庶孽流通을 시행했다. 한편 정조 때부터 집권해 온 시파時派에게 보복하기 위해 사교邪敎 금압을 명분으로 200여명의 천주교신자들을 학살할 때 시파를 모두 숙청하였다(신유박해).
 1804년 12월 대왕대비가 물러나고 순조는 친정을 시작했다. 그 뒤에도 천주교 탄압은 계속되어, 1815년에는 경상·충청·강원도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죽였다 (을해박해). 1827년에도 충청·전라도의 교인들을 검거해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순조의 친정 뒤에는, 정조의 유탁遺託을 받고 정치에 관여하게 된 국구國舅 김조순의 일문 안동김씨의 세도정권이 확립되었다. 김이익鉛履翼·김이도金履度· 김달순金達淳·김희순金羲淳·김명순金明淳등이 조정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고 전횡專橫과 뇌물을 받는 행위를 일삼았다. 이로써 인사제도의 기본인 과거제도가 문란해지는 등 정치기강이 무너졌다.민생은 도탄에 빠지고,각종 비기秘記와 참설讖說이 유행하는 등 사회혼란이 일어났다.
이를 틈타 1811년 평안도 용강龍岡 사람인 홍경래洪景來와 그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평안도 일대를 점령한 뒤 관군과 대결했다. 그러나 이듬 해 4월 정주성定州城이 함락됨으로써 난은 평정되었다. 그러나 이 해 한성에 도적과 거지떼가 들끓었고, 1813년 제주도의 토호 양제해菜齊海와 1815년 용인의 이웅길李應吉이 민란을 일으켰다. 1817년에는 유칠재柳七在 · 홍찬모洪燦謨 등의흉 서사건凶書事件이 발생했다. 또 1819년에는 액례掖隷와 원례院隷의 작당 모반운동謀叛運動이 일어났다. 1826년에는 청주에서 괘서사건掛書事件이 일어났다. 급기야 1821년에는 서부지방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순조 재위 34년 중 1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천재지변이 잇달아 발생했다.
한편 순조는 『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 『사부수권四部手圈』, 『대학유의大學類義』 . 『정조어정홍전서正祖御定弘齋全書』, 『서운관지書雲觀志』 『동문휘고同文彙考』 등을간행하게 했다. 그리고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등의 치적이 있었다.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 풍양조씨豊壤趙氏 일문을중용했다. 1827년에는 세자世子(익종; 문조)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하게 함으로써 안동김씨의 세도를 견제하려 했으나, 1830년 세자가 일찍 죽음으로써 실패했다. 1834년 11월 45세로 승하했다. 묘호는 순조純祖이다. 능호는 인룽仁陵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다.

 

2) 순원왕후(1789-1857)
 조선 23대 왕인 순조의 비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이다. 1800년 초간택 ·재간택을 거쳐 정조의 뜻이 결정되었다. 정조가 갑자기 죽어 삼간택이 연기되었다가 1802년 10월 왕비로 책봉되었다. 삼간택 문제를 놓고 시 · 벽파僻派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으며 당시 대왕대비로 수렴청정한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 김관주金觀柱와 권유權裕 들의 방해 움직임이 있었다. 1809년 문조文祖를 낳았다. 문조는1812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830년 22세로 죽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하고 1834년 익종에 추존되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순원왕후는 원상院相에 권돈인權敦仁을 지명했다. 그리고 영조의 혈맥을 잇기 위해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광의 셋째아들을 지목해 철종으로 왕통을 잇게 하고 수렴청정 하였다. 1851년 자신의 외가인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철종의 왕비로 책봉해, 그 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절정기를 이룩하였다.
 1857년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댜 자헌慈獻·현륜顯倫·홍화洪化·신운神運등의 존호가 뒤에 추상되었다.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가 전한다. 명온明溫· 복온福溫· 덕온德溫의 세 공주가 있다.  능호는 인릉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1 에 합장릉으로 조성되었다.(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 p.258~259)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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