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경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27
- 조회수 :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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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경종(景宗) 선의왕후(宣懿王后) (의릉 /懿陵)
생몰년:경종 1688~1724 선의왕후 1705~1730
재위기간: 1720~1724(32세~37세)/4년 2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 204호(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산1-5)
형식: 쌍릉
1. 경종과 선의왕후의 생애
1) 경종(1688-1724)
조선 제 20대 왕이다.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윤胸, 자는 휘서 鵬閩이다. 숙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희빈 장씨禧嬪 張氏이다. 비는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 선의왕후宣懿正后이다. 1689년(숙종15) 원자元子로 정호되자 노론인 영수 송시열宋時烈이 상조론尙早論울 주장하다가 사사되고 민비閔妃가 폐출되었다. 이듬해 세자로 책봉되고 생모 희빈 장씨는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생모 장씨는 1694년 다시 희빈으로 격하되어 1701년 사사되었다. 세자는 이때부터 질환이 있었으며, 1717년 숙종은 세자의 다병무자多病無子를 걱정해 몰래 이이명李願命을 불러 이복동생인 연잉군(延礽君: 후의 영조)을 후사로 정할 것을 부탁하였다. 또한 그 해 세자 대리청정世子 代理聽政을 명했는데, 소론 측은 세자의 홈을 잡아 바꾸려 한다 하여 반대하였다. 이후로 그를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 간의 당쟁이 격화되었다.
즉위한 이듬해인 1721년(경종 1) 그의 다병무자街丙無子를 이유로 후계자를 정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 결과 노론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둥은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게 하였다. 이어 집의執義 조성복趙聖復의 소疏에 따라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했으나, 왕의 보호를 명분으로 한 소론 측이 크게 반발해 철회하였다. 더욱이 그의 질환이 점점 심해져 정무수행이 어려워지자, 국사의 현명한 재단(裁斷)도 기대할 수 없어 그 권위도 추락하였다. 때문에 이를 기회로 권신權臣의 전횡과 당인黨人들의음모가 더욱 심해졌다.
그 해 12월 김일경金一鏡등은 세제 대리청정을 제기한 조성복과 이를 봉행하고자 한 이이명 ·검창집· 이건명 ·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을 왕권교체를 기도한다고 모함해 축출하고, 소론 정권을 수립하는 환국을 단행하였다. 이어 1722년 3월 노론 일파가왕을 시해하고자 모의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으로 소론일파의 의도대로 노론4대신을 비롯한 관련자 50여 인을 처단하고, 그 밖에 170여 인이 유배 또는 연좌되어 처벌을 받았다. 두 해에 걸친 신임사화로 노론을 일망타진한 소론은 그의 재위 기간에 정권을 전횡 하였다.
소론이 집권하자 1722년 김수구金壽龜 · 황욱黃昱 등의 상소에 따라 1717년 관작을 추탈당한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과 그의 아버지 선거宣擧의 관직증시官職贈諡를 회복시켰다.
또 그해의 흉작 으로 각도의 연분사목年分事目을 개정해 전세율을 낮추었으며 삼남지방의 양전量田에 민원民이 있다 하여 이를 시정하였다. 1723년 긴급한 일이 있어 왕이 중신을 부를 때 발급하는 명소통부命召通符를 개조했고 서양의 수총기(水銃器: 消火器)를모방해 이를 제작하게 하였다. 또, 관상감에 명을 내려 서양의 문진종(問辰鐘을 제작하게하고, 독도獨島가 우리의 영토임을 밝혀주는 내용을 담은 남구만南九萬의『약천집藥泉集』을 간행하도록 하였다. 1724년에는 서원에 급여한 전결田結의 환수를 의논하였다.
세자 때부터 신변상으로나 정치상으로 갖은 수난과 곤욕을 치렀으며, 재위 4년 동안 당쟁이 절정을 이룬 가운데, 신병과 당쟁의 와중에서 1724년 8월 25 일 일생을 마쳤다.
이러한 경종에 대해 실록을 기록한 사관史官은 경종을 이르러 성품이 인자하고 용모가 온후하였으나, 정사政事를 다스리는데 게을리하였고 조회에 임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고 특별히 언급해두었다. 1724년 9월 3일 시호를 정하기를 ‘덕문 익무 순인 선효대왕 德文 翼武純仁宣孝大王’이라하였고 묘호 는경종이며, 전호는 경소敬昭 능호는 의룽懿陵 으로 정하였다. 능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단정한 해서풍의 글씨를 잘써 서예작품이 여러 점 전해오고 있다.
2) 선의왕후(1705-1730)
조선 제 20대 왕 경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함종咸從이며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1718년(숙종 44) 첫번째 세자빈世子嬪인 심씨 (沈氏: 端懿王后)가 죽자 그 해에 14세
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가례嘉禮를 올렸고,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722년(경종 2) 왕비에 책봉되어 백관의 축하를 받았으며 1726년(영조 2) 경순왕대비敬純王大妃라는 존호를 받았다.
1730년 승하하자 시호를 선의宣懿라하고 휘호徽號를 효인혜목孝仁惠穆라 하였다. 매사에 온유하였으며 소생은 없다. 지문誌文은 판부사 이의현李宜顯이지었다. 시호는 ‘경순효인혜목선의왕후 敬純孝仁惠穆宣懿王后’이고 능호는 의릉懿陵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Ⅵ, p.294~295)
참고문헌
1. 저서
문화재청,2006 『조선왕릉 답사수첩』, 미술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이우상, 2008 『조성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다할미디어.
이정근, 2010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주)책으로 보는 세상.
김명선,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①왕릉으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 삼성당.
한은경, 2010 『우리아이 첫 조선왕릉 여행 ②다시 깨어나는 조선 역사와 정신』, 삼성당.
박호진, 2011 『우리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11가지 조선 왕릉 이야기』, 작가정신.
임소연, 2012 『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문학동네.
이창환, 2014 『세계문화유산 신의정원 조선왕릉』, 도서출판 한숲.
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3『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