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중종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10
- 조회수 : 694
![]()
11대 중종(中宗) (정릉 / 靖陵)
생몰년: 1488~1544
재위기간: 1506~1544(19세~57세)/ 38년 2개월
지정사항: 사적 제 199호(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31)
형식: 단릉
1) 중종(1488~1544)의 생애
중종은 조선 제11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역懌, 자는 낙천樂天이다. 성종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이다. 원비는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의 딸 단경왕후端敬王后이다. 제 1계비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제2계비는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1494년 진성대군晉城大君에 봉해졌고 1506년 9월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顏등이 반정反正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 시킨 뒤 왕으로 추대되었다.
문벌세가를 누르고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연산군 때의 여러 가지 폐정弊政을 개혁하기 위해 홍문관을 강화하고 유교적 도덕규범인 향약鄕約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유능한 신진사류를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고자 하였으나, 이들의 지나친 개혁정치는 기존 세력의 반발을 가져와 조광조 일파를 숙청한 기묘사화 등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사회면에서는 유교주의 도덕윤리가 정착되어감에 따라 『소학』,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1514년),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1533년)등을 간행해 국민 교화에 힘썼다. 1541년에는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주세붕周世鵬을 풍기군수에 제수하였고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영은문迎恩門을 세우는 등 유교주의적 도덕윤리를 정착시켜 나갔다.
1516년에는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해 많은 구리활자를 주조하여 인쇄술 발달에 기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사회에 긴요하게 요청되던 각종 서책의 편찬이 활발해져 『사성통해四聲通解』, 『속동문선續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이 간행되었다. 국정운영을 위한 기틀 마련에도 힘써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속록大典續錄』등을 편찬하였고 1540년에는 역대 실록을 등사해 사고史庫에 비치하였다. 또한 1542년 근정청斤正廳을 설치해 『대전속록』이후 새로 반포된 법령을 뫙 1544년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완성, 반포해 법률제도의 확립에 공헌하였다. 이처럼 중종연간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점으로, 신진사림과 훈구파의 대립이라는 정치적인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사회ㆍ문화적으로 제도가 완비되고 조선 성리학의 기틀이 정착되어 가던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1544년 11월 15일 세자인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일 창경궁의 환경전歡慶殿에서 재위 39년 만에 승하하였다. 1545년 1월 5일 시호는 ‘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으로, 능호를 ‘희禧’로, 전호殿號는 ‘영경永慶’으로 정하였다. 묘호廟號는 본래 ‘중종中宗’으로 정하였으나, 1월 6일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을 일으킨 공을 인정하여 다시 ‘중조中祖’로 고칠 것을 논의하였고 결국 성종成宗을 계승했다는 의미에 비중을 두어 고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본래 제1계비인 장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