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500년 특별전 - 중종계비 장경왕후(희릉)
- 전시일정 : 상시
- 전시관 : 효문화전시관
- 등록일 : 20-10-26 20:40
- 조회수 : 617
11대 중종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생몰년: 1491~1515
지정사항: 사적 제200호(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40-4)
형식: 단릉
1)장경왕후(1491~1515)의 생애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이다. 1491년(성종 22) 7월에 호현방好賢坊 사제私第에서 태어나 월산대군月山大君의 부인에 의해 양육되었다.
중종의 원비[후에 단경왕후로 추승]가 반정이 있은 지 7일 만에 폐서인이 되어 하성위 정현조의 집에 우거하게 되자, 원비를 폐한 다음 날 예조와 참판은 처녀를 간택하여 내직을 갖추고 중궁 책봉도 미리 거행할 것을 아뢰니, 중종이 그대로 따랐다. 1509년 좌의정 박원종 등의 건의에 의해 윤여필의 딸을 숙의淑儀:내명부 종2품직 로 삼고 당일 조정 대신들의 진하가 이루어졌다. 또한 같은 해 8월 4일에 단경왕후 신씨 端敬王后 愼氏의 손위遜位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중궁에 오른 지 4년만인 1514년(중종 6) 5월 18일 효혜옹주를 낳았고 이듬 해 1515년 2월 25일 초경에 원자仁宗를 낳았다. 그러나 원자를 출산한지 며칠이 지나 산후병産後病이 악화되어 원자를 교성군 노공필의 집에 보내고 3월 2일에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운명하였다. 『대왕대비실록大王大妃實錄』에 의하면 장경왕후는 성품이 겸손하고 돈독하여 아랫사람을 잘 훈육했다고 한다.
휘호徽號는 ‘숙신명혜淑愼明惠’이며, 1547년에 ‘선소의숙宣昭懿淑’이라 추상追上되었다. 시호는 ‘선소의숙장경왕후宣昭懿淑章敬王后’라 하였고 승하한지 60일 만에 발인하여 경기도 광주 대모산 헌릉獻陵의 좌측에 장시지내고 능호를 ‘희릉禧陵’이라 하였다. 1537년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자리로 천장遷葬 되었다.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Ⅲ, p.369)
참고문헌
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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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