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전의 자랑 만회 권득기를 통해 본 현대적 효와 예절(2018. 11. 14.)
- 등록일 : 18-11-21 10:08
- 조회수 : 946
대전의 자랑 만회 권득기를 통해본 현대적 효와 예절
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예(禮)는 다양한 사람이 사는 사회의 필수요소이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는 예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별히 남송대 주희는 자신 집안의 경험을 토대로 예절서를 출판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다. 주자가례는 조선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 평민 가릴 것 없이 주자가례는 통용되었다. 거기에 맞지 않으면 결례이자 불효라 생각했다. 무리해서라도 이에 따라야만 효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이다. 주희는 잘 나가던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넉넉한 집안의 예법을 가난한 집에 강요하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다. 오죽하면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관직에서 녹을 받지 않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했을까. 주자가례는 주희 본인이 모친상을 당해 행한 예를 적어 놓은 내용일 뿐인데, 그것을 누구나가 따라야할 예법이라 말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농토가 없거나 가난한 사람은 추석에 한번 수확물로 감사의 예만 표시하고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했다. 서인가례(庶人家禮)에서 한 말들이다.
조선을 지탱한 기본 법전 경국대전에서는 6품 이상만 3대 봉사하고, 7품 이하는 허락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였다. 사(士)와 서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제사지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누구나가 3대 봉사는 필수이고, 4대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도 일 년 열두 달 수도 없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풍성하게 차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내용이 재밌다. “지금 세상의 부인들은 제사음식을 풍성하게 차리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긴다. 제사가 다가오면 일가와 이웃에게 넉넉히 먹일 것부터 생각하며, 돈이 없으면 빚까지 얻었다. 결국 빚쟁이에게 모욕을 당하고 조상까지 욕을 보이니 어찌 그런 불효(不孝)를 행할 수 있는가!”
예의 절차와 형식은 필요에 따라 사람이 정한 것이지 불변의 절대 원칙이 따로 있어 정한 게 아니다. 인간을 위해 예법이 존재하는 것이지, 예법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있고 예 있지, 예 있고 사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예법에 얽매인 경우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예법에 노예가 되어 실질적인 형편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를 몸으로 느끼고 시정을 요구한 사상가가 대전에도 있다. 서구 탄방동 도산서원(道山書院)에 배향된 탄옹 권시의 부친 만회 권득기이다. 그는 주자가례에 따라 친상을 치르며 아마도 재산이 거덜 난 것 같다. 다행히 친구들이 도와주어 그나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뼈저린 경험을 하고난 그는 가례참의(家禮僭疑)를 저술하여 사람마다의 형편에 따른 예를 말했다.
지역성과 시의성을 감안한 예법이 핵심 내용이다. 예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서 달리 적용할 수 있다. 획일적 예를 지양하고 융통성 있는 예를 강조한 것이다. 차와 술을 예로 든 것도 재밌다. 중국에서 차는 예가 필요한 자리에 필수 요소였다. 그런데 조선은 차대신 술이 올랐다. 술이 있어야만 예를 갖춘 자리라 생각했다. 중국 예법을 절대시 하던 조선에서 차문화를 따르지 않은 것이 흥미롭다. 조선사회 차 마시는 풍토가 일반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회 권득기는 “헛되이 이런 것, 곧 차 대접을 예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말하며 조선의 특수성을 존중했다. “차는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술과 과일, 말린 고기와 식혜로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며 우리만의 예법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통한 예법 준수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집안의 빈부를 따라서 단지 산 사람이 갖추고 있는 바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하며, 지나친 상차림에 대한 지적과 현실성을 감안한 대안을 제시했다. 집안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주자가례를 따라하는 것은 문제 있다. 그것도 돌아간 분 기준이 아닌 산 사람 기준으로 한 상차림 주장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런 과거 효와 예절이 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21세기 새로운 현대적 효와 예절을 고려하며 적극 참고해야할 지적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