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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칼럼] 효와 청국장(2020. 2. 24.)

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
 

 세상에 멈출 수도, 멈추지도 않는 게 있다. 시간이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철부지 어린 시절 친구들 이맛살을 보면 안다. 어느새 검은 머리 파뿌리로 변한 모습에서 그간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 절감한다.

그나마 파뿌리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실내외 구분 않고 모자를 쓰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특별히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온갖 경조사 알림장이 동창회 모임이다. 한동안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애사가 주종을 이루더니 이제는 애들 결혼한다는 경사가 대종이다. 이렇게 그렇게 인생은 시나브로 흐른다.

언제부턴가 먹거리 취향이 조금씩 달라짐은 잔칫집 늘어놓은 음식을 선택하며 알게 된다. 파스타보다는 잔치국수가 끌리고 피자보다는 부침개에 손이 간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먹어줘야 했던 콜라와 햄버거는 어느 새 옛말이 되었고, 대신 청국장과 된장찌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의도적이기보다는 몸이 저절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제의 내 몸이 오늘의 내 몸이 아니다. 젊을 때의 내 몸과 지금의 내 몸이 같지 않다. 그렇게도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따라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부모의 몸이 내 몸이 됐다.

그 옛날 효자들이 “날이 가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애일(愛日)’의 의미가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부모님 나이는 반드시 알아야하지만, 알면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슬프다’는 논어 속 이야기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미 ‘풍수지탄(風樹之嘆)’이 돼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일까.

간혹 누군가가 현대적 효가 무엇인가를 물을 때면 ‘청국장은 전통음식인가, 미래음식인가’를 되묻곤 한다. 청국장은 전통음식이자 현재도 미래도 우리의 건강을 책임질 최고의 먹거리다. 효, 전통문화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도 미래도 우리의 정신문화를 책임질 최고의 가치이다. 비록 자라나는 세대가 냄새나는 청국장보다는 산뜻한 콜라와 햄버거를 선호한다 해도 청국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햄버거와 청국장은 애당초 출생성분부터 다르다. 서양적이든 과학적이든 아무리 새로운 요소를 가미한 현대적 효를 말한다 해도 본래적 의미의 효문화와는 같을 수 없다.

흔히들 사랑, 공경, 화해, 용서, 배려, 존중, 감사, 칭찬 등등의 내용을 갖고 현대적 효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바다건너 온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의 삶속에 깃들어 있었다. 전통 효개념 속에 없는 것들도 아니다. 다만 가부장적, 수직적 권위주의 시대의 한계에 묻혀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기득권층의 욕심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더이상 서구화가 현대화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전통에 쩔어 있던 상태에서 맞이한 근대화 과정 속에 잠시 나왔던 얘기다.

현대적 효문화 계발의 문제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수면 아래 있던 전통적 효문화의 다의성을 찾아내면 될 일이다. 그동안 수직적 질서 속에 권위, 순종, 복종, 헌신, 봉사, 희생의 요소가 효로 비쳐졌다. 그래서 특히 여성과 자녀들에게 부담만 안겨줬다. 그렇지 않은 개념들이 많았음에도 기득권층의 일방적 주장으로 이런 피해를 남겼다. 효개념도 그렇게 왜곡 됐다. 이제 왜곡되었던 효개념을 긍정적, 상호적 효개념으로 다시금 살려야 한다.

동양 고전에서 수도 없이 말했던 민본(民本), 애경(愛敬), 애인(愛人), 친친(親親), 충서(忠恕), 인의(仁義), 화친(和親),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상호적 효개념으로 그 가치를 살려야 한다. 마치 미래사회의 성장 동력을 고전에서 찾았던 서구 근대사회의 르네상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미래 정신 동력을 다시금 고전에서 찾자는 것이다. 현대적 효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미래 학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간 우리 것은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그래서 무심코 넘어갔던 고전에서 찾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개발에 관심을 기울이자. 전달 방법의 문제이지 개념적 본질의 문제는 아니다. 회초리 시대의 일방적 전달 방식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시대에 맞는 콘텐츠개발로 효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것으로 우리의 정신동력을 삼자. 이것이 바로 청국장이 저절로 당기는 세대의 책무이자 한국효문화진흥원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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