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칼럼] 효와 자연보호(2020. 6. 8.)
- 등록일 : 20-06-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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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여름이 왔다. 야들야들 여린 생명들이 어느새 짙푸른 녹음으로 변했다. 녹음 무성한 초여름을 만끽하며 강원도 답사길에 올랐다. 첩첩산중 곳곳에 숨어 있는 효관련 문화자료 찾기다. 산속 깊숙한 전혀 인적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 동네가 있고 효자정려가 있다. 신기하다. 수 백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기에 동네도 효자정려도 생겼으리라.
산중 마을을 지나 새로운 정려를 찾아나섰다. 저 멀리 고비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흑갈색 산들이 보였다. '앗! 불사(不思=아뿔싸)', 전혀 예상치 못한 산불피해 현장이었다. 삭막하다 못해 처참했다. 우거졌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산(牛山),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남쪽에 있던 산 이름이다. 우산에는 숲과 나무가 무성했다. 그런데 주변에 큰 도읍이 들어섰다. 아름다운 나무들은 하나둘 땔감으로 잘려 나갔다. 소나 양을 방목하면서 우산의 초목은 사라졌다. 우산에는 이제 어떠한 초목도 살지 못하게 됐다. 그 후로 사람들은 원래부터 벌거벗은 산이라고 했다.
‘맹자’에 나온 말이다. 처음부터 초목이 없는 산은 없다. 개발과 남벌로 초목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본래 인간은 선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악하게 되었다는 비유다. 이 글의 본래 의도가 본성 문제라 하더라도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지구온난화를 말하며 사막화를 지적한다. 사막은 어떠한 생명도 허락하지 않는다. 황무지와도 같다. 하지만 사막이 처음부터 황무지는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사막 사하라도 본래는 초원지대였다. 초목이 사라지고 동식물이 죽어가면서 사막이 되었다. 기후변화도 있겠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이 더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연환경을 무조건 보존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자연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시 맹자에 그 시사점이 있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거기서 나오는 곡식은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어 모조리 잡지 않으면 거기서 자라는 물고기를 이루다 먹을 수 없다. 도끼를 갖고 함부로 산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거기서 나는 재목을 다 쓸 수 없다. 곡식과 물고기를 이루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다 쓸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백성들이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사함에 유감이 없게 된다.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사함에 유감이 없다면 왕도(王道)정치라 할 수 있다.”
자연환경을 적절히 보호하고 활용하면 산 자에 대한 봉양과 죽은 자에 대한 예를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효를 실천하는 조건으로 자연환경의 적절한 이용을 말한 내용이다. 효와 예의 기본 조건이 자연환경의 적절한 이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원칙을 너무나 쉽게 저버렸다. 필요량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동식물이 고갈되었다. 부주의한 태도로 한순간 태워버리기도 하였다.
동식물이 사라진 환경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이 뛰어난 존재라 하더라도 자연환경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이 결코 둘이 아님을 말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인간의 도덕 윤리는 무엇하겠는가? 모든 행위의 근본인 효를 자연환경과 관계 지은 것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적절하고도 타당하다.
증자가 “수목을 때에 맞추어 베고, 새와 짐승을 때에 맞추어 잡아야 합니다”고 하자, 공자는 “한 그루의 나무를 베더라도 또 한 마리의 짐승을 잡더라도 때에 맞추어 하지 않으면 효도가 아니다”(대대예기)고 하였다. 증자가 인간의 상식적 도리에서 동식물 보호를 말하자 공자는 효의 가치에서 이를 재설명하며 강조한 것이다.
효와 자연보호,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양자를 동양의 고전은 함께 말하고 있다.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도덕 윤리 효를 대상적 존재인 자연과 결부시킨 것이다. 최고 덕목인 효를 자연보호와 연계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무엇보다 밀접함을 말한다. 자연환경을 등진 인간을 생각할 수 없다면, 효의 가치도 자연을 등질 수 없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