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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孝 이야기) 봉산동 부엉바위에 얽힌 애틋한 사랑이야기(上)(2020. 6. 1.)

대전 유성구 봉산동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이 기승을 부릴 때의 일입니다. 어느 해인가 무더운 여름철에 한 총각이 남루한 옷에다 삿갓을 쓰고 쫓기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봉산동에 있는 어느 커다란 바위로 올라가서는 봇짐을 내려놓고 바위 위에 누워서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바위 아래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며칠을 정신없이 도망 다니다가 오랜만에 취한 휴식이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총각은 배를 움켜잡고 있다가 마침 주변에 있던 바위샘으로 달려가 샘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는 바위 아래 한쪽의 흙을 파고는 봇짐에서 엽전 몇 냥을 꺼내고는 봇짐을 땅속에 묻고 마을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한낮이었습니다. 개울가를 따라 내려가면서 오봉산 아래 마을 어느 집 가까이 다가가서는 돌담 벽에 기대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담장 넘어 어떤 처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놀랐지만 처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바라보고 있는 처녀에게 손짓으로 배고픈 표시를 했습니다. 처녀는 총각 가까이 다가와서 조용한 목소리로 “담장 아래 대나무밭에 숨어 계셔요.”하고는 안쪽으로 사라졌습니다. 한참을 대밭에 숨어 있는데, 그 집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처녀가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쏜살같이 대밭으로 달려왔습니다.

“여기서 드시지 마세요. 집에 포도청 관리가 와 있어요. 어서 멀리 도망가세요.”하고는 성급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포도청 관리가 와 있다는 소리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놀라면서도 워낙 배가 고팠기 때문에 처녀가 놓고 간 광주리를 들고는 개울가 한적한 곳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광주리를 열고 속에 들어 있던 밥과 찬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시장기가 좀 가시자 동고리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쪽지를 살펴보니, “어느 도령이신지? 몸조심하세요. 세상이 험악합니다. 산에 숨어 계실 때 낮에는 연기를 주의하시고 밤에는 불빛을 주의하세요.”라고 하는 내용이 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쪽에는 스님들이 입는 적삼 한 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광주리를 들고 부엉바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하늘이 자기를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도망 오기 전 집안에서 일어난 여러 비극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 곤장에 맞아 돌아가시고, 가족들도 연좌제에 따라 위해가 미치자 어머니와 누이는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습니다. 집안에 늙은 노비로 있던 황영감이 “도련님은 피하세요. 도련님은 사셔야 이 가문이 대를 이을 것 아닙니까?”하고 봇짐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한양을 떠나 이곳 남쪽으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는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을 도와준 처녀가 한없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처녀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였지만, 그저 ‘대감집’이라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어려서 여기서 자랐지만 대감은 지금 한양에서 벼슬하면서 마을에는 한 번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끔 대감의 아내가 한양으로 올라갔다 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루는 나물 캐는 차림으로 자기를 찾아온 처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고는 집안 사정을 물어보았습니다.

“아가씨의 도움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한데 아가씨의 부친 성함은 어찌 되시나요? 대단하신 분 같으신데.”


그러자 처녀는 표정을 갑자기 바꾸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도련님이 그것을 아셔서 무얼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바구니에 있던 엽전 한 뭉치를 꺼내 놓고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한양으로 올라가 보시지요. 하지만 여주의 고향집이나 한양의 친척집을 찾지 마세요. 그들의 시선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처녀는 총각의 가정환경과 현재 처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가씨, 아가씨가 어떻게 나의 고향과 처지를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소? 대체 아가씨는 누구의 따님이요?”

이렇게 다그치자 처녀는 한참동안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가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가 어찌 도련님을 모르겠습니까? 억울하게 돌아가신 이조판서 김 대감님의 아드님이 아니십니까? 주막이나 큰 길에는 도련님을 잡으려는 방이 가득합니다.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전한 처녀는 성급히 바위 아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당시는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시절이고 당파 싸움에서 이긴 쪽은 상대 당파를 숙청하고 가족까지도 몰살하던 시절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삼족을 멸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당파싸움이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가족이 모두 죽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총각이 살아남아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황영감과 처녀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글= 한국 효 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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