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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화연구

상산김씨 효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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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역 김광윤의 처인 효녀 상산김씨는 임진왜란에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퇴주할 때 효녀의 아버지 김일의사는 300여 향병과 북천교 일대에서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니 이 흉보를 들은 무남독녀인 17세 소녀가 시종 영환을 데리고 많은 시체 중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는데 낮에는 왜적의 눈을 피해서 시체 옆에 몸을 숨기고 밤이면 수많은 시체 중에서 3일 만에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등에 업고 밤길 30여리를 걸어 고향인 상주군 낙동면 화산리에 안장했다.1793년 아버지 김일의사는 통정대부 사간원 집의에 증직되고 상주 충의단에 제향하였다. 그 후 소녀의 그 정성과 효성이 지극하여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면서 정려를 명하고 우승지 홍인호를 보내 효녀각을 건립하였다.

문화재 분야 유형문화
효문화 유형 부모공경
시 대 조선
소재지 경상북도 문경군 산양면 불미길 4-9
참고문헌 『우리고장 문화유적』(문경문화원, 1992), 『문경지』(점촌시,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