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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화연구

소년가장으로 효를 다한 장인풍張仁豊(178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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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풍의 본관은 인동으로 자는 유만, 호는 해은(海隱)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성품이 온후하여 다른 사람과 농담하는 일이 없었다. 6세에 잘못을 저지르자 어머니가 화를 내며 매를 들고 쫓아오자 잠시 도망가다 뒤돌아보니 어머니가 숨이 가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 숨이 가쁘신 것 같으니 천천히 오십시오.” 라고 말하여 어머니의 노여움을 풀게 해 드렸다. 12세가 되던 해 가난한 집에 흉년까지 들어 거친 밥과 물을 마시며 연명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이 들게 되자 장인풍은 소년가장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나무를 해오고 먼 길로 나가 품팔이를 하여 쌀을 구하였다.

문화재 분야 유형문화
효문화 유형 부모공경(봉양형, 시묘형)
시 대 조선
주 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460
참고문헌 포항시청 홈페이지(https://www.pohang.go.kr/), 현장

그리고는 물을 길러 어머니에게 죽을 끓여드리고 약을 달여 드렸다.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입맛을 잃고 먹지를 못하다가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기를 원하였다. 그는 궁핍한 살림에 사다 드릴 수가 없어 강에 나가 얼음을 깨고 들여다보며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큰 붕어 한 마리가 얼음 위로 솟아올라 붕어를 잡아 드렸다. 또 한 번은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신선이 나타나 손가락으로 앞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약초가 있으니 캐어 달여 드리라 하였다. 그래서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완쾌되어 오래도록 장수하였다.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상 때와 같이 움막을 지어 정성을 다하였으며, 채식을 하며 3년을 시묘하였다. 그의 깊은 효행에 유림 및 인동 장씨 문중에서 1927년 비를 세우고 정효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