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효문화연구

효자 김해허씨와 효부의 삼효각三孝閣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삼효각은 허기(許琦), 아들 허온(許溫)의 아내 효부 월성최씨, 아들 허식(許湜)의 아내 곡강최씨의 효행을 표창한 비각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8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소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며 효성을 다하였다. 또한 홀로 된 어머니에게도 자식 된 도리를 다했다. 아버지상 때는 나이가 어려 길지에 상묘를 정하지 못하였음을 항상 한탄했다. 그러다 비를 갖추어 이장을 한 다음 제사를 드렸더니 술 석 잔이 모두 말라 없어졌다고 한다.

문화재 분야 유형문화
효문화 유형 부모공경(봉양형, 희생형, 시묘형)
시 대 조선
주 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길191번길 25-10
참고문헌 현장, 『포항의 역사와 전통』(포항시, 1990)

허온의 아내 월성최씨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며 결혼을 한 후에도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직접 변을 받아내기도 하였고 변의 맛을 보아 병환의 상태를 점검하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한겨울에 시아버지가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최씨는 무작정 길을 나섰으나 고기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 도로변에 앉는 것을 보았다. 최씨가 쫓아가서 손으로 기러기를 잡아 시아버지에게 드렸다고 한다.

허식의 아내 곡강최씨는 결혼한 지 8년 만에 남편이 죽자 3년 동안 머리를 빗지 않았고 시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했다. 시어머니가 이질에 걸려 한 달이 넘도록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밤낮으로 옷도 벗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변을 손수 받아 처리하는 등 항상 깨끗하게 돌봐드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시어머니의 추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1810년(순조 10)에 효자·효부로 정려가 내려졌고, 김해허씨 문중에서 비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