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렬각은 나라로부터 뛰어난 행실과 탁월한 절의에 대해 정려를 받은 세 열부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보다 앞서 세 정렬각은 각각 별도로 있었지만 오랜 세월에 무너지고 떨어졌다. 마을 입구에 새겨진 아주신씨 암각비도 1990년의 도로 확장으로 훼손되었다. 그래서 다사읍에 세 비각을 합하여 세웠으며, 정절비를 세우고 장병규(張炳逵)가 비문을 지었다.
| 문화재 분야 | 유형문화 |
|---|---|
| 효문화 유형 | 가족사랑(열녀형) |
| 시 대 | 근현대 |
| 주 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본4길 18-16 |
| 참고문헌 | 현장 비문 |
아주신씨는 신달모(申達模)의 딸로 필상(必祥)과 결혼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식도 없어서 1776년(영조 52)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인 설만(雪萬)이 극진하게 상례를 치르고 정성껏 제사 지내주었다. 이 사실을 어사 심기태(沈器泰)가 조정에 알려 1783년(정조 7)에 정려를 받았고, 하인 설만은 천인을 면하였다.
월성최씨는 최진극(崔鎭極)의 딸로 양직당공 6대손 필해(必海)와 결혼하였다. 남편이 나이 20세에 일찍 죽었다. 마침 월성최씨는 임신 중이었는데, 아이를 낳아 대를 잇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10년(순조 10)에 조정에서 특별히 명하여 정려를 내렸다.
순천이씨는 이경충(李敬忠)의 딸로 양직당공 8대손 진극(鎭極)과 결혼하였다. 26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후사를 잊지 못해 몹시 슬퍼하다가 상례를 마친 뒤 시댁과 친정 부모에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42년(헌종 8)에 순천이씨의 효열을 표창하는 정려를 받았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