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서씨(達城徐氏) 서명보는 조선 숙종 때의 효자이다. 서명보는 7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주가 할 일을 거뜬하게 해내었다고 한다. 얼마 뒤 홀로 되신 아버지도 병으로 눕게 되었다. 서명보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받아 내었다
| 문화재 분야 | 무형문화 |
|---|---|
| 효문화 유형 | 부모공경(봉양형) |
| 시 대 | 조선 |
| 주 소 | 대구광역시 동구 연암공원로7길 9 |
| 참고문헌 | 현장 비문과 편액 |
얼마 되지 않은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팔아 약값으로 썼다. 서명보의 아내도 밤을 새워가며 길쌈을 하였으며, 돈을 받고 바느질도 해서 시아버지의 약값에 보탰다. 이렇게 아버지의 병간호를 24년 동안 하였다. 아버지의 병에 산비둘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그물을 쳐 놓았더니 산비둘기가 방안으로 날아들었고, 꿩이 좋다고 하여 꿩을 잡으러 산에 가려고 했는데, 부엌 뒷문으로 장끼가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은 하늘이 도와준 것이라고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우리 고장 사람들은 모두 서명보를 도와주었고 나라에서는 고기와 쌀을 내려 주었다. 서명보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는 동안 일기를 꼬박꼬박 적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시탕록’이라는 두 권의 일기장이 대구지역을 살피던 암행어사에게 발견되었고, 암행어사는 조정에 표창을 추천하였다. ‘시탕록’은 서명보가 아버지에게 약을 달여 올리면서 약재의 이름과 병의 상태를 살피기 위한 기록을 말한다.
조정에서는 서명보가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의 상공부 장관인 ‘공조좌랑’이라는 벼슬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는 정문을 내리고 효자각을 지었다.조선 숙종 때 서명보(徐命普)의 효행을 알리기 위해 지은 효자각으로 1802(순조 2)에 건립되었다가 몇 번의 이전이 있었고, 1976년 현재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서명보는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면서 24년 동안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쓴 ‘시탕록’을 기록하여 1802년(순조 2)에 효자비를 세웠으며, 1841년(헌종 7)에는 정려를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