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건과 박세주는 대를 이어 효도한 효자 집안의 효자들이다. 박승건(朴承健, 1609~1667)의 본관은 밀양, 자는 자이(子以)이다. 박승건은 아버지는 박안행(朴安行)과 어머니는 한양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 문화재 분야 | 유형문화 |
|---|---|
| 효문화 유형 | 가족사랑 |
| 시 대 | 조선 |
| 소 재 지 | 보령시 미산면 만수로 1179-1 |
| 참고문헌 | 현장 비문 |
형은 자미(子美) 박승휴(朴承休, 1606~1659)다. 효종 때 성균관전적을 시작으로 예조정랑 등을 거쳐 전라도 도사(都事), 상주 목사 등의 다양한 벼슬을 지낸 문신이다. 『현종개수실록』 11권, 현종 5년 9월 20일에 ‘상주 목사로 부임한 박승건이 관에 있는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정3품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박승건은 부모님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박안행이 병에 걸리자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러 넣어 다시 살 수 있게 하였다. 1706년(숙종32)에 효행을 인정받아 정려를 받았다.
박세주(朴世冑, 1641~1725)는 박승건의 셋째 아들이다. 박세주의 호는 정수재(靜水齋)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렸을 때부터 효심이 깊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박세주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맞아야 했는데, 어머니가 침을 맞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때 박세주는 자기가 먼저 목에 침을 꽂아 본 뒤에 어머니께 ‘침이 아프지 않으니 맞아도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박세주가 13살 때는 아버지 박승건이 용인 군수로 부임할 때 병이 났는데, 아버지의 병에 죽순이 특효약이라는 말을 듣고 추운 겨울에 죽순을 구하러 나갔다. 죽순을 구할 수 없는 계절이라 하늘에 빌어, 죽순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버지의 병이 바로 나았다고 한다. 박승건이 상주 목사로 있을 때, 병으로 쓰러졌는데, 박세주는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흘러 넣어드려 회생시켰고, 어머니가 쓰려졌을 때도 똑같이 행동하여 병에 차도를 보이게 했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보고되어 1765년(영조41)에 정려를 받았다.
효자 박승건(朴承健) · 박세주(朴世冑) 정려는 1831년(순조 31)에 현 위치의 건너편인 보령시 도화담리에 세웠다가, 주변 도로 공사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위치에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