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익의 부모님이 병에 걸렸는데 매일 병간호를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환이 깊어지자 장명익이 스스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부모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나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를 때에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니 묘 앞에 풀이 자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장효자(張孝子)’라고 칭송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명익도 병에 걸려 누웠다. 배씨는 사방에 약을 구하여 치료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위급할 때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장명익에게 먹이니, 장명익은 5년을 더 생존하였다. 5년 후 장명익이 사망하자 배씨부인은 1년 뒤 약을 먹고 자결했다. 딸 또한 효녀였는데 딸이 14살에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가세가 많이 기울어 약을 제대로 쓸 수 없었는데,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께 먹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소생했다.
| 문화재 분야 | 유형문화 |
|---|---|
| 효문화 유형 | 가족사랑 |
| 시 대 | 조선 |
| 소 재 지 |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 783 |
| 참고문헌 | 현장 비문 |
이 효행은 당시 암행어사 박우원(朴祐源) 1779(정조 3)이 상소를 올리고 1788년(정조 12)에 장명익과 배씨에게는 정려가 내려지고 딸에게는 효녀로 포상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