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에 감동하여 호랑이도 봉양을 도운 효자 김익생의 정려이다.김익생의 본관은 김녕이고 호는 성재(省齋)이며, 박팽년의 외조부이다. 아버지 김질은 고려가 망하면서 도고면 도산리에서 절의를 지키며 여생을 보냈는데, 이때 김익생이 태어났다. 그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평생 양친을 지성으로 섬겼으며 또한 문무를 겸비한 충신으로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 문화재 분야 | 유형문화 |
|---|---|
| 효문화 유형 | 가족사랑 |
| 시 대 | 조선 |
| 소 재 지 | 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 329번길 72-4 |
| 참고문헌 | 현장 비문 |
김익생이 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병을 얻어 전혀 먹고 마실 수 없었다. 잉어를 먹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엄동설한에 잉어를 찾아 나섰지만 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김익생의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 연못을 가르쳐주었다. 다음날 꿈속에서 본 연못에 가보니 갑자기 연못이 갈라지면서 잉어가 튀어나와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 드렸더니 점차 병세가 호전되었다.며칠 후 배를 드시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배를 찾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에 배를 구할 길 없어, 이곳저곳 헤매다가 겨울밤 험한 산길을 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그를 업고 달려가 어느 절 앞에 내려놓았는데, 그곳의 나무 위 까치둥지에 배 한 개가 있어, 그것을 가져가 어머니께 봉양하였다.
김익생의 이러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1405년(태종 5)에 효자 정문을 받게 되었고, 김익생은 그 후 관직에 나아가서 중추부사, 경주부윤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정려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723년(경종 3) 큰비가 내린 후 개울가 모래에서 반 토막 난 효자비와 대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려 앞에는 1996년 세운 김익생의 신도비와 1992년 세운 10세손 김정국(金鼎國, 1747~1812)의 공덕비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