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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화연구

전라남도 곡성군, 효자 안효천·안효인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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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順興安氏) 안효천·안효인 형제의 지극한 효행과 독실한 학문을 기리는 정려로 1892년에 세워졌다.

안효천(安孝天, 1739~1811)의 자는 자건(子健), 호는 회와(晦窩)·경와(敬窩)이다. 모와(慕窩) 안건(安王建)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안환(安瑍)이다. 안효천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4대가 함께 살았다. 죽음에 임하여 유언하기를, “내가 어릴 때 입었던 두 루마기는 우리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주신 것이니 비록 헤지고 더러워졌더라도 나에게 입혀 달라. 나는 이 옷을 입고 저승에 돌아가서 어머니를 모실 것이니 모자가 서로 보는 것이 이승과 어찌 다르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문화재 분야 유형문화
효문화 유형 부모공경(봉양형), 이웃사랑
시 대 조선
소 재 지 곡성군 오곡면 덕산리 246-86
참고문헌 『곡성군사』, 현장 실사 자료

아우 안효인(安孝仁, 1744~1810)의 자는 자성(子誠), 호는 만오(晩悟)이다. 맏형 효천과 함께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이 높았다. 두 형제는 학문과 효행뿐만 아니라 흉년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마을에 서숙을 짓고 어진 스승을 초빙하여 마을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향약(鄕約)을 제정하여 풍속을 순화하는 등의 큰 업적을 남겼다.

어진 재상으로 유명한 이서구(李書九)가 전라감사로 재임 시 이 두 형제를 예조에 천거했다. 어명을 받은 어사 심영석(沈英錫)은 사실을 조사하여 임금께 아뢰었다. 조정에서는 1824년(순조 24)에 두 형제에게 각각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을 내리고 8년 후 1832년(순조 32)에는 정려를 명하였다. 특히 이 정려는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높은 이서구가 나라에 천거하였다 하여 마을에서 자랑으로 삼고 있다.

정려각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사면에 벽체 없이 홍살을 둘렀다. 지금은 다소 퇴색된 느낌이 있지만 지을 당시 단청이 아름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려각 내부에는 두 형제의 호패형 정려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리고 형제에 대한 명정 현판과 정려기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