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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대혁은 본관이 여흥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을 봉양하기 위해
그물을 만들어 어부에게 주어 5일에 생선 2관씩을 바치게 하고,
푸줏간에 돈을 주어서 10일에 고기 5근씩 하는 등 부친의 건강과
입맛에 대해서도 각별히 노력하였다.
한때 부친의 발에 종기가 생겨서 유명한 의사에게도 보였으나
차도가 없던 중 마을 사람에게서 쇠비름이 좋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겨울철에 눈 녹은 곳에서 쇠비름을 발견하여 생즙을 내어 붙여드렸더니
완쾌되었다 한다.
이렇게 부모 봉양에 지극정성을 다 하여 사람들이 대효자로 칭하였다.
영동의 유생 한철리 등이 임금께 상고하여 1892년(고종 29)에 동몽교관
조봉대부의 직책을 하사하였고 정려를 명정하였다.
그 이듬해인 1893년 봄에 문밖에 정려를 세웠는데 1904년에
화적들에 의해 소실되었다. 그 뒤 1925년 봄에 손자 민우호씨가
종중과 상의하여 이 자리에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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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재
분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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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 (영동군 향토유적 제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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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문
화
유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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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공경 (봉양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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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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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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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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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용산면 부상2길 21 (부상리 산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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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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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지』, 『인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