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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희언(潘希彦)의 본관은 거제(巨濟)로 임진왜란(1592년, 선조25) 때, 용감했던 군수 반처량(潘處良)의 아들이다. 반희언(1554~?) 춘천 동내면
퇴계촌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반희언의 아버지 반처량 장군이 전사하였다. 반희언은 친지와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선산에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묘막을 짓고 그 곳에서 3년 시묘를 마쳤다.
홀로되신 어머니의 건강이 매우 약화되어 온갖 약을 구해 정성껏 병간호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근심하던 중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5구가 있는데 그 중 가운데 시체의 목을 고아서 어머니에게 공양하면 어머님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반희언이 이 말대로 하였더니
어머님의 병이 나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체의 목은 시체가 아니고 산삼이었다. 아무튼 시체의 목을 들고 지났다 해서 지명을 거수리(擧首里)라 했고,
다시 거두리(擧頭里)로 불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연세가 94세의 노경(老境)에 이르렀다. 노모의
병세가 아주 기울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노모가 딸기를 드시고 싶다고 했다. 반희언은 주저함 없이 달려 나가
심산유곡을 뒤져 딸기를 구해다 드렸다고 한다.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다시 3년상을 치렀다. 이런 효행이 임금에게 알려져 1608년(선조41)에
표창을 받았다고 하며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지금의 효자동에 정문을
세웠다. 그때부터 이 지역을 가리켜 효자문거리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정문은 없어지고, 다만 반씨의 효자문거리라는
전설만 남아 있다. 집은 동내면 퇴계촌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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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재
분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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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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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문
화
유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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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공경(봉양형, 시묘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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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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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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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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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효자동 효자상길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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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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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향교지』(2018년), 『춘주지』(춘천문화원, 1984년), 『춘천백년사』(춘천시, 1996년) |
반희언 효자와 새끼호랑이 작품
춘천 효자문